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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입장을 180도 바꾸다.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추가적으로 더 보낼 것이라는 연설방송을 했다.

"지금 당장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ISIS, 알카에다 등의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을 서식지로 삼을 것입니다. 그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The consequences of a rapid exit are both predictable and unacceptable. A hasty withdrawal would create a vacuum that terrorists, including ISIS and al Qaeda, would instantly fill."


이번 연설에서 트럼프는 눈에 띄게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는 그동안 계속 강경하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반대했었다. 

2011년


2012


2013


2014


2015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극렬히 반대하던 트럼프가 앞으로 최소 4천명을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태도를 바꾼걸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유 : 9/11 테러 사건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미국인 3천 명이 죽고 6천 명 이상이 다쳤다. 무장 조직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비행기 두 대를 납치해 뉴욕 쌍둥이 빌딩에 들이박았다. 9/11 테러 사건이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 된 지 채 일 년도 안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고 있었던 조직 '탈레반'에게 알카에다와 알카에다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국에 넘기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한다.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공습(공중습격)을 시작한다.



|1979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탈레반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왕국은 1973년 무함마드 다우드에 의한 쿠데타로 전복되고, 무함마드 다우드는 아프가니스탄 초대 대통령이 된다. 다우드 대통령이 탈소련 정책을 펼치자, 1978년 친소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가 쿠데타를 일으켜 친소 공산정권을 세운다. 타라키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에 통행금지령, 여행금지령을 등을 내리고 반대의견을 무자비로 탄압한다. 곧, 타라키 정권에 반대하는 학자와 의사, 농부 등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반정부단체에 가입한다.


1979년 4월 아프가니스탄 대부분 지역에서 저항세력이 들끓고, 친소 타라키 정권은 거의 모든 아프가니스탄 영토에 대한 통치력을 상실한다. 타라키 공산정권은 소련에 원조를 요청한다. 1979년 12월 소련이 타라키 정권을 도우려 아프가니스탄에 소련 군대를 파병하자, 소련과 냉전을 벌이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반정부단체들(무자헤딘. 아랍어로 '전사')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무자헤딘에 참여한 아프가니스탄 남자들 대부분은 단순히 외국 세력 소련의 침략에 대항하고자 했다. 미국(과 연합국)의 지원으로 무자헤딘은 승기를 잡았고,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복지에 관심 있었던 게 아니라, 라이벌 소련의 영향력을 저지하기만 하면 되었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떼 버린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없어지자, 무자헤딘을 이끌던 사람들이 편을 갈라 서로 아프가니스탄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무자헤딘 군벌은 성폭력과 고문, 학살을 개의치 않았다. 무자헤딘 출신 군벌 세력이 아프가니스탄 정부 요직을 차지한다.


이때 탈레반이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 학생들 일부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극악무도한 군벌로부터 해방하겠다'고 1996년 탈레반을 설립한다. 탈레반은 아랍어로 '학생'이라는 뜻이다. 탈레반은 곧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게 되었고, 무자헤딘 출신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모하마드 나지불라와 그의 동생을 공개적 교수형에 처한다. 이후 5년간 탈레반은 외국 간섭 없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vs 미국 : 16년간의 과정

9/11 테러 사건 한 달 후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공습(공중습격)을 시작한다. 11월에는 미군 1,300명이 직접 아프가니스탄에 상륙한다. 12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주군 미군 수가 2,500명이 넘었고, 아프가니스탄 산지 지역 토라보라(Tora Bora)에 알카에다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던 '탈레반'을 축출하고, 아프가니스탄 임시 정부를 설립했다. 미국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를 눈감아주었기 때문에 알카에다가 미국을 공격할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전 군벌 세력이 다시 아프가니스탄 정부 요직을 차지한다. 2002년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함께 탈리반을 쫓는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수는 2002년 12월 9,700명으로 늘어난다.


2003년 3월,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번에는 이라크를 침공한다.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정보는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졌고, 미국은 새로 시작한 이라크 전쟁에 정신이 팔려 알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을 좀처럼 잡지 못한다.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던 탈레반은 2004년 5월 파키스탄으로 도망간다.


2002년 일리노이주 상원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공개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 것에 집중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오바마는 2008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 선거와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시민들의 인기를 얻는다. (민주당 예비 선거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은 2003년 미국 상원의원으로서 이라크 전쟁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대통령 선거 라이벌 공화당 존 매케인은 2008년 선거 운동 당시에도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1년 만에 오바마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발표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미국 33,000명을 더 보내지만, 18개월 후에는 미군을 다시 미국에 복귀시킬 것"이라고 선언한다. 오바마가 이때 미군의 복귀 시점을 미리 공개한 점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탈레반은 오바마가 미군을 빼낼 때까지 그냥 앉아서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발표한 전략대로 아프가니스탄에 엄청난 수의 미군을 보낸다. 2010년 8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수가 거의 10만 명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계속되는 중, 2011년 5월 오바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 이웃 국가 파키스탄에서 발견되었다. 미국 특수 작전으로 오사마 빈 라덴은 서명하고, 미국은 자축한다.


2011년 6월, 오바마 정부는 앞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철수하기 시작하겠다고 발표한다. 2014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자국의 보안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2012년 9월에는 주둔 미군 수가 77,000명, 2013년 12월에는 46,000명, 2014년 3월에는 34,000명으로 준다. 2014년 5월 거의 모든 미군이 철수했고, 오바마 정부는 2016년까지 모든 미군이 철수하겠다고 발표한다. 미군은 2014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정부군 훈련과 전략 지원만 담당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2015년 탈레반이 9년 만에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도시를 탈환한다. 결국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북쪽 도시 쿤두를 되찾는데 직접 도와주어야 했다. 2016년 7월,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 정세가 "위태로워" 다음 대통령 임기가 시작될 2017년 1월 20일까지 아프가니스탄 미군 8,400명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한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수와 사망자 수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미군 수가 8,400명에서 더 늘릴 계획이다.

소스 : Agence France-presse straitstimes graphics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을 물리치지 못하는 이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지배하는 영역16년간의 전쟁 이후, 탈레반이 밀리지 않고 있다.

소스 : Reuters

현재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영토 40%와 인구 1/3을 지배하고 있다. 왜 미국의 첨단 지원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탈레반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까? 아프가니스탄 시민 입장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과 다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고위직에서부터 일반 관리인까지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아프가니스탄 정부 부정부패에 대한 여론부정부패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고 답한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소스 : AmericanProgress

아프가니스탄 공무원 직업별 뇌물 평균심지어 간호사에게도 8만 원 남짓 뇌물을 준다.

소스 : BBC


아프가니스탄 시민 사상자와 부상자 수

소스 : United Nations Assistance Mission in 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당연히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던 시민들도 많이 죽었다. 장비를 갖춘 미군에 비해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입은 타격은 더 크다. 미군 사망자 수는 2009년 317명, 2010년 499명, 2011년 418명, 2012년 310명, 2013년 127명, 2014년 55명, 2015년 22명, 2016년 14명, 2017년 7명이다.



|미국이 섣불리 이라크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미국은 2011년 이라크를 빠져나온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세워주었듯이, 이라크에서도 이라크 정부를 세워주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 역시 권력 다툼,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라크가 이라크 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그 공간을 이용해 ISIS(IS. 이슬람국가)가 성장하게 되었다. ([ISIS 이해하기] IS의 역사를 알면 IS의 미래가 보인다.) 트럼프 역시 지금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오면 테러리스트 서식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을 거다. 


트럼프는 8월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직감은 미군 철수가 옳다고 봤죠. 그리고 저는 제 직감은 거의 맞았죠. 하지만 저는 평생 백악관 집무실에서 내리는 결정은 직감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들어왔어요. 미국의 대통령일 땐 말이죠. 그래서 저는 아프가니스탄을 아주 자세히, 가능한 한 모든 각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My original instinct was to pull out -- and, historically, I like following my instincts.  But all my life I've heard that decisions are much different when you sit behind the desk in the Oval Office; in other words, when you'r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So I studied Afghanistan in great detail and from every conceivable angle."


트럼프 지지 핵심층 '대안 우파(alt-right)'는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는 걸 원치 않는다. '대안 우파' 대표 뉴스 사이트 브레이트바트에서 트럼프의 아프가니스탄 결정을 '말 바꿔 먹기(flip flop)'이라고 비난한다. 

트럼프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에 대한 브레이트바트 반응"미국 먼저(America First)'를 주장했던 트럼프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브레이트바트에서 기사를 올린다.


브레이트바트는 트럼프 대선 선거운동장이었고, 8월 중순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이 운영하는 사이트다.

트럼프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이 이반카 트럼프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배넌의 타임라인]

영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원인] 계속되는 땅따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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