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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거리 벽화누군가 팔레스타인 거리에 이 그림을 그려놓았다.

소스 : Chalky Lives




2017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다시 불붙었다. 7월 14일 이스라엘 경찰관 2명이 예루살렘 성전산(Temple Mount) 사원 근처에서 총으로 사살당했다. 범인은 팔레스타인 사람 3명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가 예루살렘 성전산 사원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했다. 금속탐지기 반대 시위에서 팔레스타인 3명이 죽었다. 19살 팔레스타인 청년은 유대인 할아버지와 자식 두 명을 찔러 죽여버린다. 이스라엘은 결국 예루살렘 성전산 금속탐지기를 철거하기로 24일 월요일 결정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속탐지기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까 우려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역사 없이 보도되는 뉴스만 읽으면 이들을 예민한 오버쟁이로 여기기 쉽다. 아니면 태초부터 싸우기 시작한 집착쟁이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시작된 지는 백 년이 채 안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00-

지금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영토는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오스만 제국 영토

소스 : ZUM


오스만 제국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다양했다. 이슬람교를 대다수가 믿었고, 유대인도 소수 있었다. 1900년대 초반부터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시오니즘(Zionism)이 유행하게 된다. 시오니즘은 유대인들의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그전까지 유대교는 종교였을 뿐, 유대인들만의 국가가 없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종교적 박해를 받은 유대인은 유대교 독립국을 소원한다. 역사적 (종교적) 고향인 중동이 제일의 장소라고 여긴다. 1900년대 초반 수천 명의 유럽 유대인이 중동(팔레스타인)으로 이동한다.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유대인 인구수 비교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유대인이 점점 더 몰려든다.

소스 : Historic Population of Israel/Palestine)



1918-

제1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오스만 제국은 무너지고 영국과 프랑스가 이 지역을 땅따먹기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이 지배한다.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British Mandate of Palesetine)이라고 한다.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영국은 앞으로 이 지역에서 일어날 일을 아직 상상 못한다. 일단 영토를 갖고 본다.

소스 : World·ology


초반 영국은 영국령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이민 오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농사를 짓고 유대인끼리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다 보니 기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유대인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영국은 복잡한 말썽거리가 생기는 게 싫어 1930년대부터 유대인 이민을 금지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무장 민병대를 조직되어 아랍 (영국령) 팔레스타인 사람들 및 영국과 싸우기 시작한다.



1939-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유대인이 나치 독일에 대학살 당한다.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 중 많은 유대인이 유럽을 떠나 영국령 팔레스타인으로 도망간다. 홀로코스트를 계기로 시오니즘을 추구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미국 등의 국제 사회도 유대인에게 독립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심어진다.



1947-

UN에서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제의한다. 이때는 영국 제국주의가 더 이상 쿨하지 않다는 의견이 국제사회에서 두루 형성되었을 때다. 그래서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이 물러나기로 한다. 단, 영국이 돌려준 팔레스타인 땅을 두 국가로 나누자고 한다. 유대인의 국가 이스라엘과 무슬림(이슬람교인)의 국가 팔레스타인으로 나누자는 거다. 예루살렘은 유대인과 아랍인, 천주교인 모두에게 성지이니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국제지역으로 지정하자고 한다. 팔레스타인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얻었지만, 영국령 전의 땅 모두를 되찾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드디어 독립국을 얻었다.


UN 팔레스타인 분할안UN 팔레스타인 분할안(우)

소스 : Vox


유대인은 UN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받아들여 (이때다!) 이스라엘 독립국 선언을 한다.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UN 분할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 팔레스타인 소유였던 땅을 유럽국 임의로 빼앗아간셈이기 때문이다. 주변 아랍 국가들도 유럽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뜯기기만 하다가 막 독립을 얻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과 이웃 아랍 국가들이 UN 덕에 땅을 얻은 이스라엘와 전쟁을 벌인다. '1차 중동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기며서 이제 이스라엘 영토는 UN 분할선보다도 더 커졌다.


1차 중동 전쟁 이후 영토 변화

이스라엘은 1차 중동전쟁으로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한다.

소스 : Dartmouth Middle East Map


이스라엘은 파란색 '가자(Gaza) 지구'와 녹색 '요르단 강 서안지구(West Bank)'를 빼고 팔레스타인 땅 대부분을 차지해버린다. ('요르단 강 서안지구'를 영어로 웨스트뱅크라고 하는 이유는 요르단 강 서쪽이어서 그냥 '강 서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UN 분할안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곳도 점령하고 예루살렘 반도 차지한다. 아랍-이스라엘 갈등은 계속된다. 이 기간 동안 아랍 국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은 아랍국가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친다. 유대인 피난민은 이스라엘로 모여들면서 이스라엘 유대인 인구는 더더욱 늘어난다.


1967-

이웃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과 사이 6일 간 전쟁이 일어난다. '6일 전쟁'(제3차 중동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또 이긴다. 이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성지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부를 지배한다. 심지어 이웃 아랍국가 땅 일부도 이스라엘이 차지해버린다. 시리아 및 요르단, 이집트는 이스라엘에게 땅을 빼앗겼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전역을 지배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사는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게 된다.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 영토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는 지못미

소스 : Ling.Nut



1978-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맺는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 이래 아랍국가와 이스라엘이 체결한 최초의 평화조약이다. 카터 미국 대통령이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의 대통령 산장으로 이집트 대통령과 이스라엘 수상을 초청하여 이루어졌다. 이 평화 협정의 목적으로 이스라엘은 '6일 전쟁' 당시 이집트로부터 뺏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돌려준다. 그러나 캠프데이비드 협정은 아랍세계에서 논란거리가 된다. 아랍 국가가 이스라엘을 국가로 최초로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다. 평화 협정을 맺은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사살당한다.


평화협정 이후 수십 년간 이스라엘과 다른 아랍 국가들은 그래도 비교적 평화롭게 지낸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여전했다. 이스라엘 군대가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를 여전히 점령했기 때문이다. UN 분할안에 따르면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독립국의 땅이어야했다.


게다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있는 '요르단 강 서안지구'로 이사를 가기 시작한다. 유대교를 퍼트리기 위한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사간 유대인도 있고, 이스라엘 땅을 넓히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사간 유대인도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 강 서안지구'로 이사한 유대인에게 지원하는 관대한 정부보조금을 노리고 이사한 유대인도 있다.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사는 유대인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군인도 따라 이사하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사람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다. 유대인 정착촌이 팔레스타인 마을 사이사이에 생기면서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에서 떼어내어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건설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유대인이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무작정 이사가는 것을 UN 등의 국제 사회에서는 불법이라 여기지만 그들도 딱히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1987-

팔레스타인 사람들 분노가 드디어 폭발했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intifada)가 일어난다. 아랍어 '인티파다'의 뜻은 '봉기'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은 1993년까지 계속된다. 1차 인티파다 기간 이스라엘 사람 수백 명과 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생긴다.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가 추구하는 팔레스타인 운동 방향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다. '요르단 강 서안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은 처음 설립 당시에는 영국령 팔레스타인 이전의 완전체를 되찾기를 원했다. 그러나 '6일 전쟁' 이후 눈을 많이 낮추었다. 이스라엘이 UN 팔레스탄 분할안에 따라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를 돌려주면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조직은 영국령 이전 팔레스타인 완전체를 원한다. 이스라엘을 아예 내쫓아버리려고 한다.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하마스(HAMAS)'라는 이름의 무장단체를 창설되었다. 이스라엘과 끝을 보려고 한다.



1993-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 간 '오슬로 협정'이 합의된다.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 지구' 내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일부 인정해주기로 한다. 오슬로 협상으로 '요르단 강 서안 지구' 통치 지역을 나누었다. 팔레스타인은 UN 분할안조차서도 팔레스타인 땅으로 인정 받았던 '요르단 강 서안지구'를 이스라엘과 공유하게 되었다.


오슬로 협상 결과

요르단 강 서안지구(West Bank)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소스 : PASSIA


오슬로 협정에 양쪽 극단주의자 모두 반대한다. 팔레스타인 쪽은 애초에 다 팔레스타인 땅이라 주장하고 이스라엘 쪽은 팔레스타인을 다 몰아내야 된다고 주장한다. '가자 지구'의 무장조직 '하마스'는 오슬러 협정을 방해하기 위해 자살폭탄테러를 한다. 이스라엘 극우 세력은 협상 당시 이스라엘 수장이었던 이츠하크 라빈을 이스라엘 도시 텔아비브에서 사살한다.



2000-

앞길이 막막한 팔레스타인은 다시 분노를 표출한다. 제2차 인티파다(2000-2005)다. 제1차 인티파다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 이스라엘 사람 1천 명과 팔레스타인 사람 3천2백 명이 죽게 된다. 계속되는 갈등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지쳤다. 이스라엘 극우성향이 강해진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경계에 벽도 짓고 검문소도 세운다.


팔레스타인 남자애가 '요르단 강 서안 지구' 벽 옆에서 놀고 있다. (2005)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는 물러났다. 무장단체 하마스가 힘을 얻게 된다. 이스라엘이 물러난 '가자 지구'와 아직 이스라엘 통치를 받는 '요르단 강 서안지구' 사이 잠깐 내전이 일어나고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는 따로 각자 운명을 개척하기로 한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연결 길을 봉쇄해버린다. 가자 지구 실업률이 40%를 치닫게 된다.


하마스 시위에 어린아이들도 많이 참석했다. 녹색은 하마스 깃발이다.



2017년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유대인 정착팔레스타인이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독립국으로 건설하는 게 더 힘들어진다.

소스 : Vox


'요르단 강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은 국제사회는 불법이라 여기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인정하고 지원해주는 곳이다. '요르단 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기지는 국제사회와 이스라엘 정부 모두 불법이라 여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인 기지조차도 제대로 잡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잡는 시늉만 하지 적극적으로 철거시켜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영토 변화 (1946-2010)팔레스타인 영토(녹색)과 이스라엘 영토(흰색)이다.

소스 : Vox


이런 갈등 상황이니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 성전산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한 일이 큰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 성전산은 '요르단 강 서안지구'가 둘러싼 지역이다. 성전산에 모든 종교인이 방문할 수 있지만, 기도는 이슬람교도만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사실상 팔레스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금속탐지기를 팔레스타인 정부와 상의도 없이 설치하니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 각각 3명이 죽었다.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는 이스라엘 정부와의 협력을 중지하겠다고 밝힌다. 24일 월요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산 금속탐지기를 철거하기로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는 계속 진행중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둘 다 이기는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 점점 힘들어진다.


2017년 7월 25일 가자지구 반이스라엘 시위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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