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women's march poster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 표 54%를 얻었다. 특히 백인 여성 유권자 중 힐러리를 지지한 사람은 고작 43%로, 오히려 여성 성추행 혐의를 받았던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여성 비율이 더 높았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흑인 유권자 95%의 지지를 얻었었다. 왜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되었을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 유권자의 열렬한 지지를 얻지 못했을까?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이름은 다들 알 것이다. 대통령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성관계가 드러나면서, 불륜을 부인한 빌 클린턴은 탄핵위기를 맞게 된다. 웃긴 건 모니카 르윈스키의 존재가 안 밝혀지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클린턴 부부가 1978년 "화이트워터" 부동산 투자를 하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사람을 몰랐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미국 아칸소(Arkansas) 주 검찰 총장과 주지사 자리를 역임한 빌 클린턴이 권력을 내세워 "화이트워터" 부동산 거래에서 부당한 압력을 가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화이트워터" 수사가 시작된다. "화이트워터" 특별검사가 임명되고 특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빌 클린턴은 "위증죄"와 "사법방해죄"로 탄핵 심판을 받는다. 빌 클린턴은 의회 하원에서 탄핵판결을 받았지만, 상원에서 탄핵이 기각되면서 가까스로 대통령 자리를 지킨다.


트럼프 스캔들이 많다 싶어도 클린턴 스캔들도 만만치 않다. "화이트워터", "소 선물(금융) 논란", "트레블게이트", "파일게이트", 그리고 빌 클린턴의 섹스스캔들이 있다. 90년대 클린턴 스캔들을 보면 왜 힐러리 클린턴은 페미니스트의 열렬한 지지를 얻지 못했는지, 트럼프-러시아 수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1978년 "화이트워터"의 발단 (앞날은 모르고 꿈에 부푼 클린턴 부부 #1)

당시 빌 클린턴은 아칸소 주 검찰총장이었고, 힐러리 클린턴은 로즈 로펌(Rose Law firm) 변호사였다. 클린턴 부부는 제임스와 수잔 맥도갈 부부와 함께 27만 평 정도 되는 미개발 부지를 산다. 이 부지를 별장 짓는 사람들에게 몇 년 이후 나눠 팔아 수익을 낼 계획이었다. 이 부지 구매 비용으로 은행에서 2억 300만 원을 빌리고 합자회사(limited partnership)를 세웠다. 부지가 아칸소 주 화이트 강(White River) 남안에 있었기 때문에 합자회사 이름을 "화이트워터 부동산"이라고 지었다.


1978년 "소 선물 논란"의 발단 (앞날은 모르고 꿈에 부푼 클린턴 부부 #2)

같은 해 빌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된다. 32살이었던 클린턴은 최연소 미국 주지사가 된다. 제임스 맥도갈은 아칸소 주 경제보좌관 자리를 얻는다. 같은 해 아칸소 주지사 부인 힐러리 로담 클린턴은 "소 선물(금융) 계약 거래"를 여러 번 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종잣돈 100만 원을 10개월 만에 1억으로 키운다. (이후 1994년 힐러리 클린턴이 영부인이 되고 나서 "소 선물 논란"이 붉어진다. 초보자로서 어떻게 그렇게 높은 수익률을 냈는지, 주지사 부인의 자리를 이용해서 특별한 정보를 얻은 건 아닌지, 뇌물을 대가로 수익을 낸 건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다) 1978년에는 앞날은 모르고 돈을 키웠다고 기뻐하는 중이겠다.


1979년 구름 낀 "화이트워터"의 꿈

희망을 품었던 "화이트워터 부동산" 앞날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연이율이 20%까지 치솟으면서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은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칸소 주 화이트 강 남안에 별장을 지으려는 사람이 더더욱 없었겠다. 아칸소 주는 미국 땅 중앙(middle America)에 위치한다. Middle America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fly-over states(동부 뉴욕이나 워싱턴 서부 캘리포니아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비행기로 하늘만 지나가기만 하는 지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클린턴 부부와 맥도갈 부부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를 하고 직접 모델하우스(견본주택)를 짓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제임스 맥도갈 주도로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린다.


1980년 제임스 맥도갈의 인생 전환점

다시 아칸소 주지사 선거가 열린다. (이때는 주지사 임기가 2년) 2년 동안 자동차세를 높였고, 잡아 가뒀던 쿠바 피난민을 놓쳤던 클린턴은 선거에서 진다. 최연소 "전직" 주지사가 된다. 새로운 공화당 주지사가 클린턴의 친구 제임스 맥도갈을 경제보좌관 자리에 유지해줄 리 없다. 제임스 맥도갈은 경제보좌관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맥도갈은 대출업을 시작하며 매디슨 대출회사(Madison Guaranty Savings&Loan)를 차린다.


1982년 제임스 맥도갈의 직진

2년 후 다시 열린 주지사 선거에서 빌 클린턴은 다시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된다. (이후 빌 클린턴은 계속 아칸소 주지사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199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빌 클린턴은 계속 아칸소 주지사였다) 맥도갈이 경제보좌관 자리를 다시 얻을 수 있었지만 이미 벌려놓은 게 있다. 맥도갈은 매디슨 대출회사에 계속 다닌다.


1985년 제임스 맥도갈의 의지

매디슨 대출회사 사무실에서 제임스 맥도갈이 클린턴 선거 운동 기금 모금행사를 연다. 클린턴은 계속되는 선거로 선거운동 빚 5천만 원이 있었다. 맥도갈 모금행사로 클린턴은 선거운동 빚을 모두 청산한다. 모금 5천만 원 중 맥도갈이 낸 기부금이 3천 5백만 원이었다.

같은 해 맥도걸은 아칸소 "캐슬 그란드(Castle Grande)" 건설사업에 17억5천만 원을 투자하려고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그 당시 미국 법은 한 개의 건설사업에 한 개 이상의 대출회사가 투자하도록 했다. 여러 대출회사의 투자를 받은 건설사업이 더 건실하겠고, 투자 위험을 분담한 대출회사도, 투자 개체가 다양한 건설사업도 위험에 쉽게 노출되지 않게 된다. 의도가 선량해 보이는 이 법이 맥도갈에게는 좋지 않았다. 맥도갈은 다른 은행에서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디슨 대출회사에서는 17억 5천만 원 중 6억 원만 법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캐슬 그란드"에 완전 몰방한 맥도갈은 법을 우회할 방법을 찾는다. 매디슨 대출회사 돈 11억 5천만 원을 여러 자회사를 거치고 거쳐 "캐슬 그란드"에 투자한다. 장부에는 어떻게 나오는지는 몰라도 "캐슬 그란드" 개발비 17억 5천만 원 모두 매디슨 대출회사 돈인 거다. 제임스 맥도갈은 주지사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다니던 로즈 로펌 변호사를 고용해 이런 우회 방법을 만들어낸다. (힐러리 클린턴이 직접 제임스 맥도갈을 담당하지는 않았다)


1986년 (바로 드러난) 제임스 맥도갈의 의지

"캐슬 그란드"에 투자한 은행은 매디슨 대출은행 한곳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수사관은 "캐슬 그란드"가 사기라고 주장한다. 맥도갈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고 7월 제임스 맥도갈은 매디슨 대출회사를 떠난다. 맥도갈은 사기 수사를 받는다.


1989년 저당 위기(mortgage crisis)

"캐슬 그란드"와 매디슨 대출회사가 모두 망한다. 특히 이때 미국 전국적으로 금융 위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때 정부가 저당 위기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2007년 금융위기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아칸소 주와 미국 정부가 상당한 돈을 들여 시장 안정화를 꾀한다. 한마디로 "캐슬 그란드"와 매디슨 대출회사는 어마어마한 정부 지출에 일조한 거다. 빌과 힐러리 클린턴가 투자한 화이트워터 부지도 저당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클린턴 부부는 화이트워터 투자 때문에 (추정치) 4천만 원에서 7천만 원 사이의 돈을 잃었다. 


1991년 빌 클린턴과 여자: 폴라 존스(Paula Jones)

5월 8일 빌 클린턴에 아칸소 호텔 방에서 폴라 존스를 만난다. 폴라 존스는 아칸소 공무원으로, 한마디로 빌 클린턴의 부하직원이었다. (이후 폴라 존스는 빌 클린턴이 이때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하고, 빌 클린턴은 그런 적 없다고 주장한다)


1992년 빌 클린턴의 이전 여자 : 제니퍼 플라워스(Gennifer Flowers)

빌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1992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다. 상대 후보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조지 H. 부시(조지 W. 부시 아빠)와 독립당 로시 페로(Ross Perot)다. 이때부터 클린턴의 과거 행적이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1992년 3월 8일 뉴욕타임스가 처음으로 "화이트워터"에 관해 보도한다. 하지만 이때 "화이트워터"는 큰 비중으로 보고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화제가 된 건 빌 클린턴의 여자 제니퍼 플라워스다. (앞서나온 폴라 존스가 아니다! 워낙 빌 클린턴 스캔들 여자가 많아서 헷갈릴 수 있다)


제니퍼 플라워스 사진배우이자 모델이었던 제니퍼 플라워스다. 유명하지 않았지만, 클린턴 스캔들로 유명해진다.

소스 : WashingtonExaminer


제니퍼 플라워스는 빌 클린턴과 12년간 불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빌과 힐러리 클린턴은 '60 minutes' 인터뷰에서 플라워스와의 불륜을 부정한다. 미국 대중이 본 힐러리 클린턴의 첫 모습은 남편의 불륜을 부정하고 불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1998년 빌 클린턴은 제니퍼 플라워스와 연인 관계였다고 증언석에서 인정한다) 


"저 태미 와이넷(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무조건 남편 곁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미국 컨트리 가수)처럼 무조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는 사람 아니에요. 저는 이 남자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용합니다. 이 사람의 경험, 우리가 같은 겪은 시간을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이 남자를 믿지 못하겠다면, 그냥 이 남자 뽑지 마세요."

“You know, I’m not sitting here, some little woman standing by my man like Tammy Wynette. I’m sitting here because I love him, and I respect him, and I honor what he’s been through and what we’ve been through together. And you know, if that’s not enough for people, then heck—don’t vote for him.”


스캔들에 휩싸인 빌 클린턴이 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받지 못했더라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평이다. 빌 클린턴(43.01%)은 조지 부시(37.45%)와 로스 페로(18.91%)를 이기고 미국 42번째 대통령이 된다. 




1993년 "트레블게이트(travelgate)"

1월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고, 5월 "트레블게이트"가 터진다. "트레블게이트"는 백악관 여행 사무소 7명이 해고되면서 시작됐다. 대통령은 법적으로는 여행 사무소 직원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지만, 한꺼번에 7명이 해고된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백악관 여행 사무소는 (워싱턴 지역 외) 정부 행사에 참여하는 정부 직원과 취재기자의 숙박을 예약하는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여행 사무소의 선택에 따라 특정 숙박기관의 수익이 달라진다"트레블게이트"가 터지자 백악관 측은 전 행정부(부시) 여행 사무소 직원들이 재정을 오용한 사실이 FBI 조사로 밝혀졌기 때문에 직원들을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클린턴 부부가 여행 사무소에서 직접 수익을 챙기려던 게 아니냐는 의혹은 없어지지 않았다. ("트레블게이트"는 이후 FBI, 법무부, 화이트워터 특검, 회계감사원, 상원 위원회의 조사를 받는다)


두 달 후 백악관 법률 부고문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친구였던 빈스 W. 포스터가 자살한다. (자신이 백악관 변호사로서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생각한) "트레블게이트"와 워싱턴 생활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 상태였다. 독립적인 여러 조사가 포스터가 자살을 한 게 맞는다는 수사결과를 내놓지만, 클린턴이 뭔가 비밀을 아는 포스터를 살해한 거라는 음모론이 제기된다. 백악관 법률 고문 버나드 누스바움이 포스터가 죽은 후 포스터 서류 일부를 힐러리 클린턴 수석보좌관에게 주었다는 것이 음모론의 근거다. 포스터 서류 중 "화이트워터" 관계 문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화이트워터" 특별검사 1. 법무장관이 임명한 로버트 피스케

클린턴 대통령은 여론에 따라 법무부 장관 자넷 레노에게 "화이트워터" 특별검사를 임명하라고 한다. 민주당 빌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서 공화당 닉슨 대통령의 1970년대 행동을 비판하고 특별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 자넷 레노는 특별검사 로버트 피스케(Robert B. Fiske)를 임명한다. 특별검사 로버트 피스케는 1) 주지사 클린턴이 아칸소 사업가 데이빗 헤일(David Hale)이 매디슨 대출회사에 돈을 빌려주도록 압력을 가했는지, 2) 1990년 주지사 선거 관련 기록을 아칸소 은행이 숨겼는지에 대해 조사한다. 클린턴은 모두 부인한다.


1994년 "소 선물 논란"의 시작과 끝 ("소 선물 논란" 이름만 봐도 오래갈 스캔들이 아니었다)

3월 18일 드디어 뉴욕타임스가 힐러리 클린턴이 소 선물 거래로 얻은 이익을 보고한다. "소 선물 논란"이 터진다. 하지만 4월 12일 전문가가 "소 선물 논란"에 대한 근거를 찾기 힘들며 힐러리 클린턴이 잘못을 저지른 일은 없다고 밝힌다. 범법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어도 힐러리 클린턴이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퍼진다. (근데 누구 사리사욕 안 챙기는 사람 있나? :)) "소 선물 논란"은 잠잠해진다. 

"화이트워터" 관련 조사는 계속된다. 특별검사 피스케가 "화이트워터" 동업자 제임스 맥도갈이 운영했던 매디슨 대출회사 관련 문서를 소환한다. 클린턴 부부는 매디슨 대출회사와 관련된 문서 가진 게 없다고 답한다. 제임스 맥도갈이 매디슨 대출회사 "캐슬 그란드" 투자 건으로 고용한 로즈 로펌 청구서도 힐러리 클린턴은 없다고 주장한다.


4월 22일 계속되는 언론과 대중의 요구에 힐러리 클린턴이 기자회견을 연다. "화이트워터" 부동산 거래에 참여했을 뿐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아는 바 없으며, "소 선물 논란"은 그냥 운이 좋았을 뿐 범법행위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힐러리는 특별검사 수사에 임하겠다고 당당히 밝히며 언론의 호의를 얻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언론이 클린턴 스캔들을 오바해서 다룬다고 언론을 비난한다.


1994년 "화이트워터" 특별검사 2. 판사 3명이 임명한 켄 스타

8월 특별검사가 바뀐다. 특별검사 피스케가 "화이트워터" 수사에서 클린턴이 범법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자, 공화당 의원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 자넷 레노가 특별검사로 피스케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특별검사법"을 제정하여 특별검사가 대통령의 입김을 전혀 받지 못 하게 한다. 새로 제정된 "특별검사법"에 따라 특별검사는 (대통령이 임명한 무부 장관 대신) 3명의 판사가 지정하게 된다. (사실 "특별검사법"은 1978년부터 존재해왔었다. 닉슨 대통령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민주당 주도로 "특별검사법"이 제정되었지만 1992년 만기 되었다. 1992년 대선 직전 특별검사가 조지 H 부시에 대한 부정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공화당 의원이 "특별검사법" 연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민주당 대통령 빌 클린턴을 조사하고 싶은 공화당 의원들이 마음을 바꾼다. 과거 공화당이 "특별검사법"에 반대할 때 클린턴과 민주당은 "특별검사법"의 중요성을 계속 말해온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검사법" 제정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특별검사에게 된통 당한 빌 클린턴이 1999년 6월 30일 "특별검사법"을 연장하지 않아서 현재 트럼프를 수사하는 특별검사 뮬러는 판사가 임명하지 않았고 법무부 장관이 임명했다. 빌 클린턴은 분명 후회하고 있을 거다) 새로운 "특별검사"로 켄 스타(Kenneth Starr)가 꼽힌다.


1995년 빌 클린턴과 여자: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Samille Lewinsky)

갓 대학을 졸업한 모니카 르윈스키는 백악관 인턴으로 취직한다. 이후 정식 입법부 직원이 된 르윈스키는 의원의 편지를 대통령 집무실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는 같이 일하는 사이니 당연히 공적으로 많이 만난다. 난 사적으로 관계만 정리하겠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만남은 이후 르윈스키가 대배심(grand jury)에서 증언을 하면서 모두 밝혀진다.



1995년 11월 15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1

이날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가 사적으로 처음으로 시간을 보낸다. 저녁 8시 백악관 서재 복도에서 키스하고 2시간 후 성관계를 맺는다.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적인 만남은 이후 1년 반 동안 계속된다)


11월 17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2. 

백악관 서재와 서재 화장실에서 관계를 맺는다.


11월 20일 르윈스키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제냐(Zegna) 넥타이 선물을 한다. 클린턴의 개인 비서를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한다. 12월 5일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가 선물한 넥타이 입고 공개 석상에 등장한다.


12월 31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3. 

백악관 서재에서 자정 1시 20~25분간 성관계를 맺는다.


1996년 1월 7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4. 

르윈스키의 집과 사무소에 빌 클린턴에 전화를 건다. 이후 백악관 서재 화장실에서 다시 만난다. 45분 간 성관계를 맺는다.


1월 16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전화 #1. 

르윈스키 집에 클린턴 대통령이 전화를 건다. 새벽 12시 반 폰섹스를 한다.


1월 21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5. 

빌 클린턴이 오후 3시 30분간 서재 복도에서 성관계를 맺는다.


1월 26일 이때 힐러리 클린턴은.

힐러리 클린턴이 "화이트워터" 대배심에서 증언한다. 미국 역사상 영부인이 대배심에서 증언하기는 처음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은행에서 돈을 빌린 적도 없으며, 은행 보러 돈을 제임스 맥도갈에게 빌려주라고 얘기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2월 4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6.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백악관 서재와 복도에서 1시간 반 동안 성관계를 맺는다.


2월 8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전화 #2


3월 31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7. 역시 백악관 서재 복도에서 45분간 성관계를 맺는다.


4월 5일 모니카 르윈스키와 린다 트립의 만남

모니카 르윈스키가 백악관을 떠나 미국 국방성으로 자리를 옮긴다. 대통령 부수석 보좌관 에블린 리버먼이 르윈스키를 국방부 대변인 켄 베이컨 비서로 옮긴다. 리버먼은 르윈스키가 "부적절하고 미성숙한 행동"을 보이고 일에 불성실했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한다. 리버먼은 대통령의 불륜을 저지하려고 르윈스키를 국방부로 보내버리지만, 이는 오히려 대통령의 불륜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국방부로 옮긴 르윈스키는 국방부 직원 린다 트립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4월 7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8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30분간 백악관 서재 복도에서 성관계를 맺는다. 대통령 클린턴은 업무 통화를 하면서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맺는다. (글 단어를 다양하게 써보려고 해도 잘 안된다. '성관계를 맺는다'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서 계속 반복하고 있다)


5월 "화이트워터" 동업자 제임스 맥도날은 사기죄를 선고받는다. 하지만 클린턴 부부가 맥도날의 불법 행동을 알고 있었고 불법 행위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아서 클린턴 부부는 아무런 죄를 선고받지 않는다.


5월 2일, 21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전화 #3, #4

(성적인 전화가 너무 많아서 이제 묶어버리련다. 설명도 딱히 생략하겠다)


1996년 6월 5일 계속 수상한 "화이트워터"

2년 전 특별검사 로버트 피스케가 클린턴 부부에게 제임스 맥도갈 관련 서류를 달라고 소환했던 거 기억나는가? 클린턴 부부는 관련 서류가 없다고 말했지만 2년 후 1996년 6월 5일 로즈 로펌 경리장부(청구 내용을 기록해 놓은 장부)가 백악관 사택에서 발견된다. (로즈 로펌 경리 장부에 맥도갈이 "캐슬 그란드" 건으로 로즈 로펌에 지급한 내용이 나와 있다) 특별검사 켄 스타의 "화이트워터" 수사는 계속된다.


6월 이번에는 "파일게이트(filegate)"

백악관 보안부장 크레그 리빙스톤(Craig Livingstone)이 1993년과 1994년 수백 명의 인적 기밀 보고서를 FBI로부터 받아 본 사실이 밝혀졌다. 리빙스톤은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적절한 범위의 파일을 받아봤다. (FBI는 중요한 일인 줄 알고 줬다) 리빙스톤이 받은 기밀 인적 보고서 대부분이 이전 공화당 정부 직원 거여서 비난은 더 거세진다. 리빙스톤의 윗선, 심지어는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까지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클린턴이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하여 인적 기밀 보고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게 아니냐는 거다.


6월 23, 7월 5일, 7월 19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전화 #5, #6, #7


7월 국방부 친구 린다 트립

모니카 르윈스키가 자신과 클린턴 대통령의 관계를 동료 린다 트립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8월 4일, 9월 5일, 9월 30일, 10월 22일, 12월 2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전화 #8, #9, #10, #11

모니카가 국방부로 옮기고 나선 전화가 주 매체다. 이 와중에 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넥타이 선물도 하고 대통령은 고맙다는 쪽지도 보낸다.


클린턴과 르윈스키10월 23일 민주당 모금행사에서 빌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를 껴안는다. 이 당시만 해도 불륜 사실이 유출되지 않아서 당당했다.

소스 : Dirck Halstead/Getty Images


11월 5일 클린턴이 대통령 재선 성공

멀티플레이어 클린턴은 그동안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선에 성공한다.


1997년 1월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전화 #12

새해가 밝았다.


2월 8일 켄 스타도 사람이다.

계속되는 수사에도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켄 스타는 "화이트워터" 수사에 대한 열정을 잃나 보다. 특별검사 켄 스타가 "화이트워터" 수사를 종결하고 페퍼다인(?) 대학교 법 교수로 가겠다고 발표한다. 아직 클린턴 부부의 범법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힌다. 하지만 공화당으로부터 비난이 들끓자 마음을 바꾸고 수사를 계속해보겠다고 한다.


2월 28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적인 만남 #9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오랜만에 다시 직접 만났다. 단골 장소 서재와 서재 화장실에서 성관계를 맺는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윌트 휘트먼의 책 '풀잎(Leaves of Grass)'을 선물한다. 이 책은 빌 클린턴이 힐러리 로담 (클린턴)과 연애할 때 힐러리에게 선물했던 책이다.


3월 29일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나중에 보니 마지막) 성적 관계를 맺는다.

5월 24일 클린턴이 르윈스키에게 관계를 끝내자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야기한다. 클린턴이 친구로 남자고 이야기한다.


5월 27일 폴라 존스가 다시 전격 등장

미국 대법원에서 폴라 존스 재판이 진행해도 된다고 밝힌다. 폴라 존스는 빌 클린턴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대법원의 판결로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8월 빌 클린턴과 또 다른 새로운 여자: 캐슬린 윌리(Kathleen Willey)

(르윈스키 법무성 동료) 린다 트립이 백악관 직원 캐슬린 윌리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립스틱이 번지고 부스스하게 나왔다고 언론에 이야기한다. 빌 클린턴 대변인은 린다 트립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반박한다.


9월 린다 트립의 활동

린다 트립이 르윈스키와의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한다. 르윈스키는 친구 트립에게 대통령과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10월 11일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전화 통화

클린턴이 새벽 2시 반에 르윈스키 집에 전화를 건다. 감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클린턴은 르윈스키가 뉴욕에서 직장을 찾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11월 3일 미국 UN 대사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이 르윈스키에게 일자리를 제의한다. 르윈스키는 이를 거절한다.


11월 12일 폴라 존스 재판 진행된다. 폴라 존스가 클린턴 변호사에게 증언한다.


11월 말 린다 트립과 폴라 존스

트립은 르윈스키가 클린턴의 정자가 묻은 파란색 드레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르윈스키 보러 드레스 씻지 말라고 얘기한다. 트립은 그리고 폴라 존스와 그녀의 변호사에게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불륜 관계를 얘기한다.


모니카 르윈스키 드레스모니카 르윈스키가 킵한 드레스 사진이다. 이후 특별검사 스타가 하원 보고서에 올린다.

소스 : 스타 리포트


12월 5일 빌 클린턴 안 좋은 예감을 갖다.

클린턴 대통령이 폴라 존스 재판 증인 리스트에 모니카 르윈스키가 등재된 걸 알게 된다.


12월 8일 (그래서 시작된) 빌 클린턴의 노력

클린턴 개인 비서 베티 커리(Betty Currie)가 대통령 친구 사업가 버논 조단(Vernon Jordan)에게 르윈스키 구직을 부탁한다.


12월 11일 조단이 레블론(미국 화장품 회사)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르윈스키 일자리를 부탁한다.

12월 17일 폴라 존스 변호사가 르윈스키에게 재판 출석요구서를 발부한다.

12월 26일 르윈스키는 국무성을 일단 떠난다.


12월 28일 (계속되는) 빌 클린턴의 노력

클린턴 비서 커리가 대통령 선물을 르윈스키에게 전달한다. (침대 밑에 숨긴다)


1998년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불륜(만)을 인정한 빌 클린턴

클린턴은 바쁘다. 클린턴 대통령은 캐슬리 윌리 성추행 혐의도 받는다. (캐슬리 윌리는 린다 트립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립스틱 번져 나오는 걸 봤다는 그 여자다) 클린턴 대통령은 "캐슬리 윌리를 성추행한 적 없다"고 진술서에 서명한다. 앞으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무서웠는지 빌 클린턴은 (제니퍼 플라워스가 갖고 있을 증거가 두려웠는지) 그동안 계속 부인해왔던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불륜 관계를 이때 인정한다.




1월 7일 르윈스키의 거짓 진술서

르윈스키가 폴라 존스 재판에 직접 소환되지 않기 위해 폴라 존스 재판에 제출할 진술서에 서명한다. "클린턴과 성관계를 맺은 적 없다"고 서명한다.


1월 12일 스타에게 연락한 트립

린다 트립이 특검 켄 스타에게 르윈스키와의 녹취 파일(20시간)을 준다. 특검 스타는 르윈스키가 거짓 진술을 했음을 알게 된다. 거짓 진술한 경우 법적 처벌 대상이다.


1월 13일

스타는 트립에게 몰래 마이크를 차고 르윈스키와의 대화를 녹음하라고 지시한다. 르윈스키는 레블론(미국 화장품 회사) 일자리 제의를 받아들여 레블론으로 이직하기로 한다.


1월 16일

레스토랑에서 식사 중이던 르윈스키를 특검 팀이 호텔 방으로 데려간다. 마이크를 몰래 달고 클린턴, 커리(비서), 조든(사업가)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라고 요구한다. 특검 팀은 르윈스키가 특검 팀의 요구에 따르면 면책권을 줄 것이고, 따르지 않는다면 기소하겠다고 협박한다. 르윈스키가 변호사를 부르지 못하게 한다. 아직 르윈스키의 거짓 진술서가 폴라 존스 변호사에게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르윈스키가 변호사를 불러 르윈스키의 진술서가 존스 변호사에 도착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면, 르윈스키는 범법 행위를 한 게 아닌 게 된다. 불륜은 불법이 아니라 진술서만 르윈스키 변호사가 미리 해결했다면, 특검 팀은 르윈스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르윈스키는 새벽 12시 23분에 풀려난다. 르윈스키는 엄마에게 연락했고, 르윈스키 엄마는 변호사 윌리엄 긴스버그(William Ginsburg)을 고용한다. 긴스버그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지 면책 거래를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1월 17일 르윈스키가 새벽에 풀려난 날, 뉴스위크 잡지는 특검 팀이 (클린턴의 불륜 사실을 입증할) 르윈스키 테이프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스타는 지금 수사 진행 정도를 보도하면 수사가 위험에 빠지니 아직 르윈스키 테이프 입수 사실을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뉴스위크에게 부탁한다. 뉴스위크는 뉴스를 내보내지 않는다.


특검 팀이 르윈스키 테이프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빌 클린턴은 폴라 존스 성추행 재판에서 르윈스키와의 불륜 사실을 부인한다. (이날 이 증언으로 인해 클린턴 이후 "위증죄"로 탄핵 심판을 받게 된다)


1월 19일 드러지 보고(Druge Report. 미국 우익 인터넷 신문) 뉴스위크 잡지가 르윈스키 테이프를 입수했지만 보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한다. 뉴스위크 잡지가 빌 클린턴을 돕기 위해 기사를 안 낸 것으로 사람들은 착각한다. 드러지 보고는 전국적인 신문이 아니고 신빙성이 좀 떨어큰 일은 안 일어난다.


1월 21일 큰 일이 일어난다.

공신력 있는 워싱턴 포스트가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와의 불륜 가능성을 보고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부인한다.


특별검사 켄 스타워싱턴 포스트가 대통령 불륜 가능성을 제기하자 언론이 특검 스타에게 달려간다. 드러지 보고는 지못미

소스 : ABC news

1월 26일

빌 클린턴이 기자회견을 연다. 힐러리 클린턴은 옆에서 빌에 대한 믿음을 (미국 대중에게) 뿜어낸다.


빌 클린턴 기자회견매우 유명한 장면이다. 남자 정치인이 바람 피우고 기자회견을 열 때마다 이 장면이 항상 다시 언급된다.

소스 : ABC news

"제 말 잘 들으세요. 저는 모니카 르윈스키랑 성관계를 맺은 적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고 저를 위해 거짓말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I want you to listen to me. I did not have sex with that woman, Monica Lewinsky. I never told a single person to lie, not a single time, never,"


1월 27일 힐러리 클린턴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르윈스키 스캔들이 "우익 음모론"일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사적에서 르윈스키를 "narcissistic loony toon(자기 도취증에 빠진 미친 여자)"라고 불렀다는 게 2014년 언론에 보도된다)


1월 29일 폴라 존스 재판 판사가 폴라 존스 재판에서 모니카 르윈스키가 주요 참고인이 될 이유가 없다며 르윈스키 관련 증거를 재판 증거물 목록에서 빼라고 명한다.

공화당으로부터 음해당하고 있다고 여겨진 클린턴 대통령 인기는 정점을 찍는다. 갤럽 설문조사에 의하면 67% 미국인이 클린턴 대통령 지지한다고 조사되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녹음된 르윈스키를 믿는 사람은 13%밖에 없었다.


2월 11일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에 대한 근거 없는 혐의가 곧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3월 13일 폴라 존스와 존스 변호사가 법정 함구령을 깨고 폴라 존스 사건 증거를 대중에 공개한다.


3월 20일

빌 클린턴이 '대통령 특권(executive privilege)'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다. '대통령 특권'은 누구든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아도 법정 모독으로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말 그대로 대통령이 갖는 특권이다. 빌 클린턴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보호하고, 그 사람들이 특검 팀의 면책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대통령 특권을 이용해보려 한다.


4월 1일 폴라 존스 소송이 증거불충분으로 결국 기각된다.


5월 아칸소 주에서 열린 "화이트워터" 대배심은 30개월 만에 종료된다. "화이트워터"로 감옥에 간 사람은 수잔 맥도갈(제임스 맥도갈 부인)밖에 없다. 그것도 수잔 맥도갈은 대배심에서 증언하기를 거부한 법정모독죄로 18개월 형을 받는다. ("화이트워터" 당시 클린턴은 대통령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통령 특권'이 수잔 맥도갈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나중에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직전에 대통령 사면권으로 수잔 맥도갈을 사면해준다)


5월 연방판사 노마 할로웨이 존슨(Norma Holloway Johnson)이 클린턴 대통령의 대통령 특권을 거부한다. 대통령 스캔들에 관한 경우 '대통령 특권'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6월 30일

워싱턴 주에서 열린 "클린턴 위증/사법 방해" 대배심은 계속된다. 트립은 워싱턴 대배심에 클린턴과 르윈스키 불륜에 관한 증거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 10%만이 트립 편이었다. 워싱턴 대배심에 소환된 사람만 수십 명이다. 백악관 직원, 클린턴 친구, 친구의 친구, 비서, 보좌관, 경호원, 정치고문, (자살한) 빈스 포스터 변호사까지 소환된다.


린다 트립맨 오른쪽 여자가 르윈스키 옛 친구 린다 트립이다.

소스 : ABC news

7월 25일 특검 스타가 클린턴 대통령 대배심 출석요구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된다.


7월 27일 르윈스키가 뉴욕에서 특검 스타와 만나 면책 거래를 한다. 클린턴 대통령과의 불륜 사실을 특검 팀에게 인정한다. 빌 클린턴이 자신에게 거짓말하라는 얘기는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르윈스키가 대배심에서 "완전하고 진실한 증언"을 하는 대가로 르윈스키와 르윈스키 엄마는 면책권을 얻는다. 불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르윈스키 엄마는 대배심에서 그 사실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르윈스키 엄마도 면책권이 필요했다. 르윈스키가 파란색 드레스를 넘긴다. 드레스는 FBI 수사실에 넘겨진다.


7월 29일 빌 클린턴이 8월 17일 대배심에 자발적으로 참석하겠다고 한다. 특검 팀은 대통령 출석요구서를 철회한다.


8월 3일 클린턴은 DNA 테스트를 위한 혈액 샘플을 요구받는다.

8월 6일 르윈스키가 대배심에 출석한다.


8월 17일 빌 클린턴이 대배심에서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친밀한 접촉"을 했다고 인정한다.


1998년 8월 빌 클린턴 대배심1998년 빌 클린턴이 대배심에 참여한다.

소스 : ABC news


8월 19일 빌 클린턴이 DNA 샘플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다.

8월 20일 르윈스키가 다시 대배심에 출석한다.


9월 9일 특별 검사 켄 스타가 스타 리포트(Starr Report)를 하원에 제출한다. 스타 리포트는 상자 18개가 넘는 엄청난 양이었지만 (특별검사 출범 이유였던) "화이트워터"에 관계된 내용은 거의 없었다. 공화당 하원은 스타 리포트를 대중에 공개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9월 18일 공화당은 클린턴 대배심 증언 영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배심은 언론에 비공개된 채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동안 대중은 언론에 보도되는 단편적인 내용만 알았다. 민주당은 영상 공개에 반대했다. 하원 법사 위원회에서 대배심 내용도 대중에 공개해야 된다고 투표한다.


9월 21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인정하는 빌 클린턴 증언 영상이 미국 전역에 보도된다. 3천 페이지가 넘는 스타 리포트와 함께 모니카 르윈스키가 증언에서 묘사한 대통령과의 성행위도 공개된다.


스타 리포트로 공개된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사진스타 리포트로 공개된 사진 중 하나

소스 : ABC news


이후 빌 클린턴 탄핵 심판이 진행된다. 미국 탄핵 심판은 하원을 통과한 다음, 상원을 통과해야 한다. 하원에서 빌 클린턴 탄핵 선고를 내린다. 탄핵 심판의 근거는 "파일게이트"도, "트레블게이트"도, "화이트워터"도, 심지어는 빌 클린턴의 불륜 사실도 아니었다. 빌 클린턴이 "화이트워터"로 드러나는 불륜 사실을 덮기 위해 한 "위증죄"와 "사법방해죄"였다. 하지만 상원에서 탄핵 건이 기각되면서 빌 클린턴은 대통령직을 사수한다. 클린턴 지지율이 그 당시 73%로 굉장히 높았고,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으며, 탄핵 근거가 실제 정책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스캔들이었기 때문에 상원에서 탄핵을 기각한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위증"으로 상원에서 처벌을 받지 않지만, 민사상 모독죄로 9천만 원 벌금형은 받는다. 변호사 자격도 정지당한다. 민사 소송을 건 폴라 존스와는 유죄인정 없이 8억 5천만 원에 합의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인기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도 치솟는다.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힐러리 클린턴을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겠고, 남편과의 의리를 지켜서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다. 


힐러리 클린턴 지지도 1993-2012힐러리 클린턴은 공직에 출마하면 인기가 떨어진다. (2000년 뉴욕 상원 의원, 2007년 민주당 대통령 대선 후보 경합) 다시 올라간 인기가 2016년 대선에서 다시 떨어진다.


그 당시 진보적이라는 뉴욕타임스 "야망 있는 21살 여자 때문에 대통령직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누가 알았느냐"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21살 싱글 인턴과 50살 기혼 상사가 성관계를 맺었다면 누가 더 잘못한 걸까? (지금도 조금 남아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지조'는 여자가 지키는 것이고, 남자는 여자가 유혹하면 어쩔 수 없이 넘어간다고 바라봤다. 남자가 바람나면 그 원인은 몸을 가볍게 놀린 '불륜녀'와 너무 남편을 잡은 '아내' 영향이 크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르윈스키 때문에 대통령직이 무너졌다고 적은 뉴욕타임스 기자도 2016년 longformpodcast(기자 인터뷰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기자 생활 중 제일 후회가 되는 문장이 그 문장이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 본인이 대통령직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니카 르윈스키는 2014년 Vanity fair에 나오면서 재조명된다. 


모니카 르윈스키 2014년 사진2014년 모니카 르윈스키가 10년 만에 인터뷰한다. 그 10년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소스 : Vanity Fair

2015년 모니카 르윈스키 Ted Talk2015년 Ted Talk에서 르윈스키가 기립박수를 받는다. 2015년도 Ted Talk에는 클린턴 부통령이던 앨 고어도 참석했었다.

소스 : Steve Jurvetson


남편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아도 제자리를 지키고 여자를 깍아내린 힐러리 클린턴은 가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온다. 2014년 다이앤 소여(Diane Sawyer. 유명한 앵커) 인터뷰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골드만삭스 등 부유한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여태까지 연설료로 50억 원을 벌었는데 비난을 받을 거 알면서 왜 그렇게 연설료를 많이 벌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기억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는 백악관 나왔을 때 빚이 상당했어요.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도 돈이 별로 없었고 집들 융자금과  첼시(딸) 교육비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했어요. 쉽지 않았어요. 빌이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You have no reason to remember, but we came out of the White House not only dead broke, but in debt, We had no money when we got there, and we struggled to piece together the resources for mortgages for houses, for Chelsea's education. It was not easy. Bill has worked really hard. And it's been amazing to me. He's worked very hard.


특검 재판 변호사 비용은 모두 클린턴 부부가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클린턴 부부가 돈을 많이 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집들(!)을 마련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이 돈 벌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는 답변으로 힐러리 클린턴은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젊은 나이로 정치계에 진출한 빌 클린턴은 언더독(약자) 아웃사이더 효과를 톡톡히 봤다. 1992년 대선에서 조지 H 부시와 경쟁하면서 클린턴은 자기는 이미 12년간 워싱턴에서 지낸 부시(부통령 8년과 대통령 4년)와 다른 '아웃사이더'라고 어필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워싱턴 상원 의원이 된 지 4년 만에 45살의 나이로 2008년 아웃사이더로 대선에 출마했다. 빌 클린턴의 아내로 처음 소개된 힐러리 클린턴은 워싱턴에서 닳고 닳은 '인사이더'로 인식을 받으며 69살의 나이로 2016년 대선에 출마한다.


클린턴의 과거는 2016년에도 클린턴의 뒤를 쫓았다. 트럼프는 자신의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공개되고 이틀 후 폴라 존스, 캐슬린 윌리, 후아니타 브로드릭(Juanita Broaddrick), 캐시 쉘튼(Kathy Shelton)을 불러 기자회견을 연다. 후아니타 브로드릭은 클린턴 성추행 혐의를 제기한 또 다른 여자다. 캐시 쉘튼은 힐러리 클린턴이 로즈 로펌 시절 대변했던 성폭행 가해자의 피해자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변으로 성폭행 가해자는 10개월 감옥형밖에 받지 않았다. 


트럼프와 폴라 존스, 캐슬린 윌리, 후아니타 브로드릭, 캐시 쉘튼2016년 10월 10일 트럼프 기자회견 모습이다.

소스 : CNN


여성에 대한 자신의 태도로 비난을 받자, 트럼프는 빌 클린턴도 자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고 화제를 돌리려고 한 거다. 두 번째 대선 토론이 시작되기 2시간 전이었다. 트럼프 선거 조직은 대선 토론장에도 여성 4명을 데려온다. 카메라가 비치는 트럼프 '가족석'에 이 4명을 앉히려고 했지만 토론 위원회의 개입으로 그 계획은 실패한다. 이 4명은 일반 관중석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토론을 지켜보게된다. 빌 클린턴과 첼시 클린턴은 힐러리 쪽 '가족석'에 앉았다. 


미국 2016년 대선 2차 토론2016년 10월 10일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토론이 한창이다.

소스 : REUTERS/Lucy Nicholson


성추행 혐의를 받는 후보 도널드 럼프(트럼프 역시 몇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를 받는다) 추행 혐의를 받는 남편을 둔 후보 힐러리 클린턴. 45대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아웃사이더'라고 어필한 도널드 트럼프가 된다.


클린턴 스캔들의 과정을 지켜본 트럼프가 특별검사 뮬러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러시아 수사도 "화이트워터"처럼 불어날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러시아 스캔들의 시작은 2016년 7월 FBI가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는지에 대한 수사였다. 그러다 트럼프 선거 운동 직원이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전화 통화한 사실을 FBI가 알게 되고([트럼프 스캔들 정리] 기본 3요소 정리: 이메일 해킹, 마이클 플린, 트럼프 신상조사서) 트럼프 관련자에 대한 수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자 모두 관례로 공개하던) 납세신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가 스캔들 이전에는 트럼프 재산이 생각보다 없어서라고 여겨왔다(미국 엘리트가 트럼프를 깔본 이유 4가지 - 트럼프 재산과 birther, 출마와 정당). 하지만 스캔들 이후 트럼프가 러시아와 재정 관계가 얽혀있어서 납세신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거 아니냐는 설이 제기된다.


트럼프가 트럼프-러시아 수사를 진행해오던 FBI 국장 제임스 코미를 해고하면서 ([트럼프 스캔들 정리 2]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에 달린 대통령 탄핵 여부) 특별검사로 로버트 뮬러가 임명되었다. 이제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관계자와 러시아가 내통했나를 넘어 트럼프 관계자 개인의 행적도 수사 대상이다. 뮬러 특검 팀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혀진 것만 11개다. (지금 트럼프가 받는 11개 조사 정리 (업데이트) [트럼프 특검]) 트럼프 선거운동장이었던 폴 매너포트, 정책 고문이었던 마이클 플린,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라인스 프리버스도 소환 대상이다. 현재 특검 뮬러는 워싱턴에 대배심을 열어 트럼프 관계자를 속속들이 소환하고 있는 단계다. 이들은 면책 특권을 대가로 트럼프 정부에 불리한 정보를 대배심에서 증언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트럼프 대배심은 클린턴 때와 마찬가지로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워낙 높아 트럼프 대배심 내용에 관해 계속된 보고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트럼프 대배심이 좀 더 진행되면 그에 대해 글을 올리겠다.



가족과 친구와 나누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네이버
밴드
카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