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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2014년, 2015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소식이 뉴스를 뜨겁게 달구다가 요즘 상황은 잘 보도가 안 되고 있다. (물론 뜨겁게 달구었다는 건 국제 분쟁 소식치고 화제가 됐다는 얘기다. 대부분 사람 별로 관심 없다 :-)  ) 특히 트럼프 당선 이후, 러시아 정부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관여했는지(스포일러:했다), 러시아 정부와 트럼프 가족과 선거운동 관계자들이 내통하였는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7년 9월 1일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24차례 공격했다.




2014년 말부터 평화협상이 시도되었고, 2017년 7월 말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의 정상이 전화 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은 말로 풀 오해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러시아는 현 우크라이나 정부가 기존 친러 우크라이나 정부를 정당하지 않게 내쫓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반해, 현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18일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크림 반도)를 러시아로 합병시켰었다. 21세기에 땅 주인이 바뀌는 건 워낙 흔치 않은 일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이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제일 화제가 되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은 2004년부터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실상 1600년대에 갈등의 씨앗이 심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위치(보험용) 천연자원(수익용)


세계 지도에서 우크라이나 위치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있다.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 명칭은 '내륙', 또는 '국경 지방'이라는 뜻이다. 땅덩어리가 우리나라(남한)의 6배에 달하는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있다. 열강 사이에 끼어 있는 국가는 항상 열강들의 세력 다툼에 이용당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두 나라 사이에 있는 이라크 땅에서 대리전을 벌이며 중동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땅에서 대리전을 벌이며 서로 경계를 했다. 전쟁의 명목으로는 대게 종교가 이용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우, 무슬림(이슬람교)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으로 변질되었다.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 등의 연맹국과 러시아 제국은 1853년 정교회(Orthodox Church)와 천주교회(Roman Catholic Church)의 갈등을 명목으로, 크림반도에서 전쟁을 벌인다. 크림 전쟁(Crimean War. 1853~1856년)이다.



위치적으로 복을 받지 못한 우크라이나는 서쪽, 동쪽 등으로 쪼개졌다, 서로 다른 열강의 지배를 받다, 1991년에서야 독립하게 된다. 1991년 이전,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었던 때는 1918년 1월에서 1919년간 약 1년간이다. (January Uprising) 하지만 당시 끊임없는 내부 분열로 이때 우크라이나가 제대로 된 독립 국가였다고 보기 힘들다. 우크라이나는 1600년대 러시아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the Great) 시절에도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유럽을 일차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지역인 동시에, 풍부한 천연자원과 식량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는 석탄과 철 등이 풍부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러시아 출신 사람들이 대거 이민한다.



(여담이지만, 예카테리나 2세는 내가 관심 있게 봐왔던 사람이다. 그녀는 러시아 황태자 표트르 3세와 결혼해 황후가 된 이후, 표트르 3세가 바보임을 깨닫자 그를 축출하고 러시아 제국 여제가 된다. 러시아 제국의 힘을 키웠으며,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예카테리나 역할을 맡고 싶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영향력을 넓힌 인물이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착취한 인물이겠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1922년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했다. 소련 초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1924년 1월 사망했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 모두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착취했지만, 스탈린만큼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한 사람도 없다. 1932년에서 1933년 사이 최소 380만 명, 많게는 750만 명으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아사했다. 소련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그 당시 우크라이나가 세계 제3위 양곡 수출국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 잔인한 짓이었다. (우크라이나 양곡 수출로 돈을 버는 건 소련이다) 



홀로드모로 당시 기사 1당시 신문 기사다.



홀로드모로 당시 기사 2말도 그냥 길가에 쓰러져 아사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이 사건(홀로드모로. Holodomor)을 '집단 학살'로 정의한다. 학자들은 그리고,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홀로드모로를 일으켰다고 바라본다.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시민을 이주시키고, 우크라이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소련화'하려고 노력했다. (러시아 제국 때도 마찬가지였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러시아 시민들이 대거 거주하게 되었다.


스탈린이 1944년에는 크리미아(크림 반도)에 살던 우크라이나 타타르족을 우즈베키스탄에 강제 이주시켜버린다. 3일 만에 19만 명이 자기 땅, 자기 땅을 잃고 내쫓긴다. 그리고 크리미아 빈자리에 소련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했다. 많은 사람이 강제 이주 과정에서, 그리고 혹독한 이주민 생활로 죽어 나갔다. 지금도 크리미아에는 소련 출신 사람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타타르족 사람들이 크리미아에 돌아왔지만, 그들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고작 12%다.


1991년 12월 25일 7시 고르바초프가 소련 해체 선언 연설을 하고 붉은광장에 러시아 삼색기가 올라가면서 공식적으로 소련이 해체했다. 소련이 본격적으로 붕괴하면서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했었다. 조지아는 1991년 4월, 우크라이나는 1991년 8월,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9월 독립 선언을 한다. 1991년 우크라이나에서 전국적인 국민 투표가 이루어졌고 우크라이나 인구(우크라이나 토박이와 소련 출신) 90% 이상이 우크라이나 독립을 원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불황을 심각하게 겪지만, 2000년도 이후 점차 안정되는 기색을 보였다.




|독립 국가가 된 우크라이나의 선거: 동부와 서부의 이질감은 계속된다.

그동안 계속 여러 구역으로 쪼개어 각기 다른 열강의 지배를 받은 우크라이나는 지역별로 많이 다르게 성장해왔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러시아와 가까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러시아의 간섭으로 공업적 성장을 했다.



우크라이나 지역별 모국어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어가 모국어라고 여긴다.

소스 : Brookings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사실 2004년 대선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되했다.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당시 국무총리였던 친러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부정 선거로 당선된다. 야당 대선 후보 빅토르 유시첸코(Viktor Yshchenko)는 선거 기간 동안 독살 당해 거의 죽을 뻔했었다. 가까스로 살아난 유시첸코는 대통령 야누코비치 퇴진 요구 시위를 주도한다. 오렌지 혁명(2004년 11월~2005년 1월)이라고 부른다. 2004년 12월 3일 우크라이나 대법원이 선거 무효 판결을 내렸고, 12월 26일 재선에서 결국 유시첸코가 이긴다. (러시아만 우크라이나 정치에 개입한 건 아니다. 유시첸코는 서방의 재정적·전략적 지원을 받았다. 다른 나라가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개입한다)



우크라이나 2004년 대선 지역별 지지후보서부는 유시첸코, 동부는 야누코비치를 지지한다.

소스 : Brookings



2005년 1월 23일, 유시첸코가 대통령에 취임한다. 문제는 경제학자 유시첸코가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천러냐, 친유럽이냐가 관심거리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우크라이나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7년 미국발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우크라이나 경제가 15% 감축한다. (여담: 모기지 사태를 예견하고 떼돈을 번 사람들에 관한 책 The Big Short를 추천한다. 영화로도 나왔다)


2004년 부정 선거를 통해서도 권력 잡기에 실패한 야누코비치가 2010년에는 정당하게 대선에서 이긴다. 48%의 표로 우크라이나 제4대 대통령이 된다. (1대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1991~1994년, 2대 레오니드 쿠치마 1994~2005년, 3대 빅터 유시첸코 2005년~2010년, 4대 빅터 야누코비치 2010년~2014년)



우크라이나 2010년 대선 지역별 지지 후보역시 동부는 야누코비치를 지지한다.

소스 : Brookings




|경제 불황 속, 블라디미르 푸틴의 선택

경제 공황이 일어나면, 국민은 기득권 대통령과 정치인들로부터 등을 돌린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재선에서 이겨 권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작아진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경제 공황 덕에 친러 우크라이나 정부가 들어섰다. (푸틴에게) 문제는 러시아에서는 경제 공황 당시 푸틴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푸틴은 2000년에서 200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는데, 헌법상 8년 "연속"으로 대통령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 임기 한 회(2008년~2012년)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그동안 본인은 국무총리직을 맡는다. 푸틴은 2012년 다시 대통령 대선에 출마해 이긴다)


2012년 5월 6일 러시아에서 만 명 이상이 참여한 푸틴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쳤다. (당시 국무부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2012년 푸틴 반대 시위를 지원했다. 푸틴은 이를 갈고, 2016년에 복수한다) 푸틴은 내세울 경제적 성과가 없다. 그래서 푸틴은 맨날 티비에 나와 반서방 프로파간다를 얘기하기 시작한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2013년 말 푸틴은 기회를 잡는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연합(EU)과의 경제 협력 추진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친러 대통령 야누코비치가 이를 전면 거절한다. 대신,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빚을 지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11월부터 유로마이단(친유럽성향의 우크라이나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키아라이브 광장에서 열린다. 그들은 EU와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기를 원했다. 정부가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면서 시위는 점차 커진다. 2014년 1월경, 시위는 정부의 부정부패, 인권 등 우크라이나 정부 전반에 대한 반대시위가 돼버린다. 2014년 2월 20일까지 우크라이나 군대와 경찰의 탄압으로 80명이 넘는 시위자가 죽었다. 곧 대통령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에서 도망쳐버린다. (2014년 2월 우크라이나 검찰은 그를 공금 횡령 및 탕진 혐의로 기소했으며, 지금은 인터폴 국제지명수배자 명단에 오른 신세다)



유로마이단 시위 지역역시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친러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소스 : Brookings



대통령 도망 이후, 우크라이나 국회의장 올렉산드로 투르치노프(Oleksandr Turchynov)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임시정부는 우크라이나 언어가 우크라이나 공식 언어라는 법을 통과하고, EU와 NATO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NATO는 러시아를 견제하는 국가 연맹 단체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NATO 헌장 5조를 연설문에서 빼버려서 논란이 되었었다. NATO 헌장 5조는 "연맹국 한 나라에 대한 군사 공격은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즉각 개별 회원국 또는 집단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러시아 푸틴은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가 헌법 위반이라고 여긴다. 공정한 선거로 당선된 야누코비치를 시위대가 선거를 거치지 않고 내쫓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크레미아와 동부 지역에서도 임시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인다. 2014년 2월 25일, 친러 시위자들이 크레미아 의회 앞을 가로막고, 크레미아 독립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2월 말부터 러시아 특수부대가 크레미아 정부 건물들을 "지키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반대에도 2014년 3월 14일 크레미아 독립 주민투표가 시행된다. 크레미아 의회가 발표한 주민투표 결과 95%가 크레미아의 러시아 합병을 원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선거였다. 푸틴은 물론 크레미아 주민투표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주장을 했고, 3월 18일 러시아는 크레미아를 합병한다. 국제사회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레미아를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보지만, 지금까지 크레미아는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 지지율2014년 3월 크레미아 합병 직후, 푸틴은 경제 불황으로 잃었던 인기를 되찾는다.

소스 : LEVADA Center



4월, 러시아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반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7만 명 이상의 (대부분 민간인) 사람들이 죽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4년 5월 11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도네츠크에서도 분리독립투표가 시행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연히 반발했지만, 친러 도네츠크 세력은 투표 결과 독립찬성이 89%이었다며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을 세운다.


푸틴에게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푸틴은 반군이 민간 비행기를 쏴버릴 줄은 몰랐다. 2014년 7월 17일, 우크라이나 반군이 실수로 말레이시아 항공을 격추한다.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이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반군의 미사일로 격추당한다. 그 비행기에는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말레이시아, 영국, 독일,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 인도네시아 국적 등의 민간인들이 타고 있었다. 안 그래도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크레미아 병합에 규탄했었다. 많은 희생자가 나온 네덜란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국가는 진상표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말레이시아 항공 격추 사건으로 러시아 지원이 잠시 어려워졌었다.


러시아의 크레미아 합병 이후 2014년 미국과 유럽 연합은 몇 차례에 걸쳐 '러시아 제재'를 가한다. 2014년 하반기 러시아 화폐 루블의 가치는 급락했으며, 러시아는 경제 불황에 빠진다. 2014년 원유 가격이 하락한 것도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다. 경제 불황 속에서 푸틴은 더더욱 반서방 프로파간다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러시아 경제 침체는 푸틴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를 견제하는 서구 세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푸틴에게 사실 많은 선택지가 없다. 러시아 경기 불황 속, 러시아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는 기회를 엿본 푸틴은 그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크리미아를 손에 얻은 푸틴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러시아 제재' 때문에 러시아 경기를 악화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은 더더욱 반서방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푸틴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정말 '러시아 제재' 풀어줄까 무서운 (심지어 공화당 주도의) 미국 의회는 '러시아 제재 법안'을 통과시켜버렸다.


('러시아 제재 법안'은 대통령 법안 거부권(veto)을 무효로 하는 '압도적 다수(super majority)'로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어차피 대통령 법안 거부권이 무효가 될 것을 알고 '러시아 제재 법안'에 서명을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곧, 의회가 자신의 협상 카드를 없앴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자신이 러시아와 "엄청난(Huge)" 협상을 이끌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원유 가격이 2014년에 비해 많이 올라 러시아 경제가 좀 나아졌다. 하지만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에 장기적인 미래는 없다. 러시아 사람들이 서방 세력(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좀 더 알고 싶다면 'Lisa Dickey'의 'Bears in the Streets'를 추천한다. 작가는 러시아에 1995년, 2005년, 2015년에 간 경험을 바탕으로 러시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적었다. 일례로, 2015년 영화 '마션(The Martian)'을 본 한 러시아인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일부로 러시아 항공우주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중국 항공우주국의 도움을 받아했다며 분해했다. 푸틴이 어떻게 반서방 프로파간다를 이용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강국 러시아 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푸틴의 프로파간다를 원한다.


2017년 우크라이나 영역

소스 : Al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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